TS로얄 - Second Day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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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왜."

 리엘은 사라의 말에 퉁명스러운 태도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사라가 뭔가를 불쑥 내민다. 자세히보자, 금속으로 장식된 화려한 검집와, 거기에 꽂힌 긴 직도 형태의 칼이 보인다. 리엘은 가만히 사라를 노려본 후 그것을 받아들었다.

 "자, 무릎꿇고 목을 늘여."

 "......뭐?"

 "목 쳐달라고 하는 거 아니었어?"

 "무슨 헛소리야!!!"

 리엘의 농담에 길길이 날뛰는 사라. 그러자 리엘은 칼을 쑥 뽑더니 정말로 사라의 목에다 대고 겨눈다.  손잡이에서부터 쭉 곧게 뻗어나와있는 직도라, 물체를 베어내는데 우수하다고 하긴 힘들겠지만 사람의 목 정도는 쉽사리 떨굴 수 있을 예리함이 느껴졌다.

 "시끄러워,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이 년아."

 "......음."

 그 말에,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입을 다무는 사라. 하지만 곧, 그게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여자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만다.

 "그게 다 네 년 때문이잖아."

 "그래서 어쩌라고?"

 "사과하라고."

 "아니, 너같은 거 말고 이 칼 말야."

 ......너같은 거로 취급당했다.

 "......됐어, 그냥 이리 줘."

 진저리를 치며 칼을 돌려받으려는 사라. 그러자 리엘이 묻지도 않은 질문의 답을 툭 하고 대답한다.

 "사인검(四寅劍)."

 "......응?"

 "사인검이라고, 그거."

 "......헤에, 한자 읽을 줄 아는구나."

 그 말에, 리엘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같은 바보랑 같이 취급하지 말아줘."

 "이게......죽을라고......"

 하지만 결국 칼을 뽑진 않는다. 한숨을 내쉬며 칼을 왼손에 쥐고 늘어뜨리는 사라. 고풍스런 장식이 멋들어진 칼이, 그녀의 손 안에서 흔들린다.

 "왠지 멋진데? 강력할 것 같아."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에 만든다고 해서 사인검."

 가만히 해설을 덧붙여주는 리엘. 사실 무구에 대한 지식은 그다지 많다고 하기 힘들지만, 사인검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 한국사를 가르치던 교수에게서 들었던 기억이 조금 남아있었다.

 "헤에......점점 더 멋진데......?"

 "......하지만 왕권의 상징물."

 "호오......왕의 검이란 말이지?"

 이렇게까지 이야기해줘도 못 알아듣는 그녀가 한심스럽다고 생각하며, 리엘은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너 말야, 왕이 직접 칼 들고 싸우는 거 봤어?"

 "......아더왕?"

 멋진 예를 들고 있었다. 순간 말문이 막히는 리엘.

 "아니, 그런 거 말고! 우리나라에서 말야!"

 "......광개토대왕?"

 진짜 멋졌다. 하지만 리엘은 왠지 화가 난다고 생각했다.

 ".....에이씨, 어쨌든 그러니까 그건! 그냥 '왕권의 상징'일 뿐이지 실전용의 검이 아니란 말야!"

 하지만 사라는, '중국검을 길게 늘여놓은 듯한 비실전적인 검'을 두 손으로 들어올리며 자랑스레 말한다.

 "그러니까, 이게 '엑스칼리버'같은 거란 말이지?"

 "......어이, 내 말 듣고 있어?"

 "오오......보구인 건가! 설마, '약속된 승리의 검'을 쓸 수 있는 건가!?"

 ......안 듣고 있었다. 리엘은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하기야 뭐, 어차피 진품도 아닐테고......보아하니 잘 베이긴 잘 베일 것 같다. 그러면 뭐 충분하지. 리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어디로 갈 거야?"

 정처없이 방황하기도 질린 리엘이 그렇게 묻자, 사라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대답한다.

 "예전에 마음이 맞을 것 같은 애가 하나 있었어. 걔를 찾자."

 사라는 예전에 자신이 금은콤비를 제의했던 은발의 여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특별한 의견이 없었던 리엘은, 그냥 생각없이 사라의 의견에 찬성했다. 그리고 그녀들은 은발의 여자-여자 13번 유영선-를 찾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데 도대체 어디로 가야되지?"

 "몰라, 일단 그냥 걸어."

 "......"

 ......하지만 별로 바뀐 것은,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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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여교는 고민하고 있었다.

 "......잠을 너무 많이 자버렸어."

 아니, 너무 많이 잤다고 하기에도 모자랐다. 어쨌든 해가 중천에 뜨고서야 겨우 일어난 그녀였으니까. 그녀의 직업이, 주로 야간에 뛰는 일이 많았다는 점을 고려해도 이건 좀 너무한 감이 있었다.

 "......어쩌지? 메이......"

 지금은 자신의 곁에 없는 친구에게 묻고 있는 그녀. 아무래도 너무한 건 그녀의 늘어진 긴장감인 듯 했다.

 "반드시 무사할 거야......메이는."

 그 친구가 충분히 무사할 뿐 아니라 이미 사람도 한명 죽였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여교는 방금 전까지 잠들어있던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 기지개를 켜자, 활동에 대한 욕구가 솟아난다. 여교는 배가 고프다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가 병원의 급식실로 향했다. 옆에 붙어있는 주방에 들어서자, 줄지어 늘어서있는 냉장고들이 보였다. 그 중 하나를 열어보자, 어째선지 냉동 레토르트 카레와, 징공포장된 쌀밥들이 가득 들어있는 것이 보인다. 왠지 뭔가 불합리해 보이는 구성. 그러나 여교는 전혀 고민하지 않고 그것들을 꺼내어 하나씩 뜯는다. 심지어 콧노래마저 불러가며.

 찌익- 찌익- 찌익- 찌익-

 "흐흐흥~"

 찌익- 찌익- 찌익- 찌익-

 ......너무 많이 뜯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10인분은 될듯한 분량을 다 뜯더니, 레토르트 카레는 카레대로, 밥은 밥대로 큰 냄비에 털어넣는다. 그리고 가스를 켜서 데우기 시작.

 "요리는 많이 할수록 더 맛있는 법이죠~"

 실로 어처구니없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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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큭!?"

 탕!!!

 총소리가 들리기 직전, 이미 고우키는 옆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뭔가 굉장히 묵직한 탄환이, 자신이 방금 서있던 위치를 헤집고 파고드는 것이 보인다. 방아쇠를 당길 때 나는 작은 쇳소리가 아니었다면 전혀 눈치채지 못할 뻔 했었다.

 "이게......무슨!!!"

 불같이 화를 내며 나무 뒤로 몸을 숨기자, 자신이 방금 구해주었던 붉은 머리의 여자가 엽총의 슬라이드를 당겨 재장전하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똑바로 자신에게 향해오는 총구. 고우키는 반사적으로 나무 줄기 뒤로 몸을 움츠렸다.

 탕!!!

 퍽!!!

 다시 총성이 울리고 묵직한 탄환이 나무에 깊이 박히는 소리가 울린다. 크기로 보나 무게로 보나 평범한 탄환이 아니었다. 엽총이라면 보통 산탄을 사용하지만, 최초 타미에게 지급되었던 그 엽총에는 슬러그탄이 장비되어 있었다. 동시에 여러 발이 쏟아져 나가는 산탄이 아니라, 단 한발만 발사하는 대신 크고 무거운 만큼 훨씬 강력한 탄을 쏘아내는 탄종이다. 방탄차량을 뚫을 때도 사용하곤 하는 헤비급 탄환. 물론 고우키가 그것을 알고 있을 리는 없겠지만.

 "칫, 뭔지는 모르겠지만......저건 피할 수 밖에 없나!"

 작은 산탄이라면 어떻게 급소를 가리고 나머지는 몸의 근육으로 막아낼 방법도 있었겠지만, 저런 무식한 탄이라면 방법이 없었다. 고우키가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상대는 계속 위치를 바꿔가며 고우키를 압박해오고 있었다. 조금만 틈을 보여도 한발 제대로 먹고 말 그런 상황-!

 "기껏 목숨을 구해줬더니......내 목숨까지 내놓으라니, 엉터리같은 짓은 정도껏 하란 말이다!"

 결국, 분을 이기지 못한 고우키가 불같이 화를 내며 공중으로 자신의 몸을 띄워올린다. 시오가 공중으로 뛰어오른 그를 향해 총을 겨누자, 순간 고우키가 던진 작은 돌이 엽총을 맞춰 시오의 겨냥을 흐트러뜨린다. 아슬아슬하게 고우키의 옆을 비켜난 무거운 탄환. 그리고 엽총의 재장전을 하기도 전에, 고우키가 자신의 앞에 선 나무줄기를 두 다리로 밟는다. 마치, 나무 위로 걸어가려는 듯한 자세.

 "우리얍---!!!"

 그러나- 역시 나무를 수직으로 올라가진 못한다. 그 대신 거센 기합성과 함께, 반대쪽으로 튕겨나듯 점프하는 고우키. 온몸의 탄력을 최대한 살려, 약간 비스듬히 아랫방향으로 스스로 뛰어든다. 그리고 공중에서 자세를 반전- 한쪽 다리를 길게 뻗고 나머지 다리는 아래쪽에서 굽혀서 균형을 잡는다. 그대로 아래쪽의 목표인 나무를 향해 뛰어들어 삼각 날아차기를 먹이는 고우키.

 우지직!!!

 나무와 인간의 살이 부딪히는 소리라곤 생각하기 힘든 굉음이 울리고, 그다지 굵지 않은 나무 한그루가 그대로 쓰러진다. 굵어지는 대신 높게 자라나는 침엽수라곤 해도, 그래도 충분히 두꺼운 나무 한 그루가 그의 발끝에서 우지직 하고 부러져나간다. 자신의 머리 위로 덮쳐오는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시오.

 콰드드득......쾅!!!

 나무가 바닥에 쓰러지며 굉음을 낸다. 쓰러지면서 부러뜨린 주위 나무들의 가지가, 사방으로 떨어져내리며 시야를 가리는 틈을 타, 고우키는 재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솔직히 말해, 그 여자가 이 정도로 죽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왠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

 그리고 여자 11번 시오는, 고우키가 사라진 직후 나뭇가지를 헤치며 바닥에 나있는 구덩이에서 천천히 기어나왔다. 그 구덩이는 자신을 습격했던 남자 13번 신이 매복을 위해 파놓았던 구덩이였다. 고우키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에는, 이렇다 할 분함 같은 것은 떠올라 있지 않았다. 그저, 언제나와 같이 감정없는 희미한 미소만이 드리워져 있을 뿐.

 ......아니- 어쩌면 그 무감정이야말로, 즐거운 일-살인-을 성공하지 못했다는 그녀의 낙담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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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7번 나나는, 자신의 무기인 정체불명의 총을 소중히 끌어안고 길을 걷고 있었다. 방향은, 아무래도 주변에의 감시가 용이한 장소, 즉 전망대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곳에 선객이 있으리라는 사실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고, 그래서 그 선객과 마주친 순간 패닉에 빠져버렸다.

 "소, 손드세요! 이 총은 보기엔 이래뵈도 사람 한두명 정도는 우습게 죽일 수 있는 총입니다! 아니 제가 마음만 먹는다면 수십명도 우습게 죽일 수 있습니다! 이, 이건 천상천하 일격필살포이니까요! 염동력이 있던지 없던지간에 지형보정없이 9999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최강의 무기인 겁니다! 그러니까 레이저포라구요! 미국의 스타워즈 계획에서 부산물로 만들어진 초소형 레이저발진장치를 내장한 최신형 총인 겁니다! 그래서 이건, 진짜로 맘만 먹으면 액시즈도 떨어뜨릴 수 있다니까요? 암튼 이건 진짜 사테라이트 캐논인 겁니다! 맞으면 아파요? 아파서 죽을 지도 모른다니까요? 진짜 아프단 말예요! 어쨌든 이건 진짜로 하이메가 입자포인 거니까요! 그러니까 얼른 손들라구요!!!!!!!"

 "......"

 카르는,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쳐들어와서 엄청나게 긴 말을, 엄청나게 많은 느낌표를 사용해서 말하고 있는 여자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요상한 무기-천상천하 일격필살포인지, 레이저포인지, 사테라이트 캐논인지, 아니면 하이메가 입자포인지 모를-와 함께.

 "......저, 저기."

 "쏩니다! 쏜다구요!!!"

 나나는 여전히 패닉 중. 손에 든 정체불명의 총을 마구 휘둘러대다가, 한번은 떨어뜨릴 뻔 하곤 다시 주워들어 카르를 겨냥한다. 끝에 달린 렌즈에서 불길한 빛이 반짝인다. 카르는 왠지 이 시츄에이션이 마음에 안 든다고 생각했다.

 "이봐, 좀 진정하지 않겠어?"

 "지, 지금 제가 진정하게 됐습니까?! 갑자기 납치되고 나니, 쉴 곳도 없고, 친구도 없고, 무기는 이 따위 쓸데없는 물건이고......"

 "......"

 "아, 이건 진짜 총이니까요! 날 무시하지 말란 말예요!"

 ......자신이 했던 말을 자신이 부정하고 있었다. 카르는 한숨을 내쉬며, 나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녀 쪽으로 걸음을 한발짝 내딛었다. 그 순간, 나나가 히익- 하는 소리를 내며 방아쇠를 당긴다. 순간 굳어지는 카르. 그러나 렌즈에서 잠시 빛이 번쩍 한 것 말고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걸 깨닫자 총을 내팽개치고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하는 나나. 카르는 그런 그녀를 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손에 들고 있던 자신의 무기-뾰족한 연필 몇자루-를 슬쩍 숨기고 나나에게 다가가 자신이 먹고 있던 것-레토르트 카레와 밥-을 내밀었다.

 "......먹을래?"

 대답은 없었다. 나나는 빼앗듯이 접시를 가로채더니, 마치 코를 박듯이 카레를 입 안으로 깨끗이 청소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쓰러지듯이, 전망대 1층의 소파에 드러누워 잠이 든다. 그 모습을 보던 카르는 앞으로는 좀더 경계에 신경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위의 전망대로 올라가 주위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응?"

 순간, 카르는 자신의 몸에서 열이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미한 미열. 그러나 머리가 아픈 것은 아니다. 그 외의 증상은- 피부가 조금 간질간질했다. 카르는 손으로 팔뚝을 슬슬 긁으며, 나나의 총이 뭔가 효과를 발휘한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했지만, 그녀로서도 자세한 것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뭔가 이상한 부작용이 나타나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여자 3번 카르는, 다음 날이 되면 자신이 어떤 기묘한 상황에 놓이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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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13번 신은, 손에 넣은 보우건을 쥐고 즐거운 기분에 빠져있었다. 사용할 수 있는 화살이, 보우건 몸체에 꽂혀있는 예비분 5발 밖에 없다는 건 조금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화살은 재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니까, 잘만 사용한다면 그 핸디캡은 없는 게 되는 셈. 신은 자신의 무기였던 전기충격기를 뒷호주머니에 넣고, 장전한 보우건을 왼손에 쥐고 조심스레 길을 걷고 있었다.

 '다시 자리를 잡고 은신해서 적이 나타나길 기다릴까, 아니면......사냥감을 찾아 다니도록 할까......'

 마치, 던전에서 파밍을 하느냐 아니면 필드에서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느냐 정도의 무게감만 실린 말이었다. 온라인 게임을 하는 감각으로 자신의 전술을 짜는 신. 그는 새로 얻은 아이템의 위력을 생각하고, 필드사냥을 택하기로 했다.

 '......방금의 그 괴물만 만나지 않으면, 이길 수 있겠지.'

 보우건의 화살을 손으로 쳐내는 괴물. 신은 마치 야만인같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다. 그에게 맞았던 어깨는 아직도 통증이 심해 움직이기 힘들었다. 고우키가 삼각 날아차기로 나무를 부러뜨렸던 장면을 봤더라면, 아마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바로 그때, 신은 새로운 사냥감을 발견했다. 혈색이 나빠보이는 하얀 얼굴의 남자. 몸에는 어째선지 긴 옷을 걸치고 있다. 분명히 일리시드......라고 하는 기묘한 이름의 남자. 신은 그를 다음 타겟으로 정하고, 천천히 보우건을 겨냥한 채 접근하기 시작했다.

 "......손들어."

 그리고 뒤에서 어느정도 거리를 띄운 채, 그렇게 경고한다. 그러자 별다른 동요없이 정말로 아무것도 갖고있지 않은 두 손을 든다. 신은 그걸 보며, 상대가 변변한 무기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덕분에 신은 기고만장해서, 거만한 목소리로 상대에게 명령했다.

 "천천히 뒤를 돌아봐. 그래, 천천히......부디 날 자극하지 말라구. 나도 모르게 쏴버릴지도 모르니까."

 "......"

 협박 반, 농담 반으로 그렇게 명령하자, 여전히 묵묵히 뒤를 돌아본다. 하얗게 날이 선 피부가, 왠지 칼날처럼 보인다. 한 눈에 봐도 기억할 수 있을만한 기묘한 인상.

 "......쏘지 않을 건가?"

 냉정한 목소리. 그러나 신은, 그것이 냉정을 가장한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냉정을 깨뜨려, 자신의 우세를 확인하기 위해 상대방을 윽박지른다.

 "쉽게 쏘면 재미없지 않아?"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군."

 마치 왜 자길 쏘지 않느냐고 진지하게 묻고 있는 듯한 태도에, 신은 화가 난다고 생각했다. 최초에는 상대에게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바로 공격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이런 식이라면 화가 난다.

 "네 목숨은 지금 내게 달려있는 거라고. 그걸 모르는 건가?"

 "......그래, 그거 참 좋겠군."

 신은, 머리가 어떻게 된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혀를 찼다. 정말로 정신이 이상한 녀석이라면, 더이상 말해봤자 소용없다. 신은 곧바로 본론을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그건 어쨌든 상관없고......혹시 다른 녀석과 마주친 적이 있나?"

 그러자, 시드는 잠시 고민한 끝에 대답했다.

 "현재로선 두 명. 한 명은 직접 마주쳤고, 한 명은 멀리서 봤지."

 "누구와 누구지? 이름과, 무기, 특징, 발견한 위치 및 시간을 말해."

 신은, 게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제 일보-정보-를 시드에게서 캐내고 싶었던 것이었다. 시드는 다시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대답했다.

 "한 명은 네코......라고 하는 녀석이었지. 부분염색에 샤기컷을 하고 있어서, 알아보긴 쉬울 거다. 무기는 44구경 매그넘, 발견한 장소는 여기서 좀 떨어진 서쪽 숲 속. 시간은......글쎄, 아마 어제 오후경이었던가."

 어제라면, 똑같은 위치에 아직도 있을 확률은 낮다. 하지만 그 무장은......군침이 도는 것이었다. 44구경 매그넘이라면, 아마 조금 전의 그 괴물도 잡을 수 있다. 신은 마침 좋은 정보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럼 다음은?".

 좋은 정보를 얻었다는 희열에, 조바심을 내는 신. 그래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시드와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음......다음은, 분명히 메이라는 이름의 여자였지. 몸매가 끝내주는 여자라서,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어. 브라 사이즈는 아마도 D컵."

 쓸데없는 것까지 말하고 있었다. 신은 짜증을 내며, 시드를 다그쳤다.

 "그런 건 됐어! 다른 건!"

 "그래......기다려보라고. 그러니까, 무기는 잉그램 기관단총과 사슬낫. 아, 사슬낫은 상대에게서 뺏은 거지. 살해당한 쪽은 리린이라는 이름의 여자. 근거리에서 온몸에 총알을 맞고 죽어버렸지. 정말 끝내주더군."

 잉그램 기관단총......총알 분무기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명중율이 낮지만, 그대신 빠른 연사력과 작은 크기를 갖고 있어서 근거리에서는 상당히 강력하다. 신은 예전 FPS 게임을 즐기며 습득한 지식을 활용해 무장의 효용성을 평가하며, 이것도 꽤나 군침이 도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발견한 장소와 시간은?"

 그러자 왠지 대답을 못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일리시드.

 "글쎄......오늘 오전이었던 것 같긴 한데......장소가 말이지."

 지금까지의 말투와는 다르게, 왠지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짜증이 난다고 생각한 신은, 그에게 한발 다가서며 강하게 시드를 다그쳤다. 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반격을 우려한 듯 너무 가까운 거리로 다가가진 않았지만, 이미 시드와의 거리가 약 3m에 가깝게 줄어있음을 깨닫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거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시드는 눈으로 흘깃 거리를 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장소가 아마도 저기......"

 "저기 어디란 말야!"

 결국 답답함에 소리를 친다. 시드는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멍청한 자식-

 "아- 그러니까, 저기 말이야. 저기."

 그렇게 애매하게 말하면서, 손으로 자신의 어깨 너머를 가리킨다. 그 말에, 다시 한발짝 다가서는 신. 그러자 그 순간, 시드는 약간 멍청한 듯한 표정 위에, 희미한 비웃음을 싣고 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 혹시 내 이름을 알고 있나?"

 갑자기 달라진 태도에 신은 조금 놀랐지만, 그래도 맨손으로는 닿지 않을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별로 공격당할 것을 걱정하는 태도는 아니었다.

 "분명히 일리시드였지. 그런데 그걸 왜 묻는 거지."

 "......알고 있었군. 알고 있는데도 이렇게 날 얕본 건가......후후후."

 정말로 안타깝다는 듯 웃는다. 계속되는 그의 기묘한 태도에, 신은 무심코 한발짝 물러났다. 아니, 물러나려 했지만-

 "뭐, 뭐야?!"

 어느새 자신의 다리를 감아오는 긴 물체들. 아니, 물체가 아니라 생물체의 일부였다. 마치 문어의 다리를 길게 늘여놓은 듯, 꿈틀꿈틀거리며 아래로 기어와 자신의 다리를 낚아챈 그것-

 "......으앗!!!"

 비명을 지르며 보우건을 쏘려고 하지만, 그 순간 '그것'들이 신의 두 다리를 낚아채버린다. 그대로 넘어지면서 하늘로 헛되이 보우건을 쏘아버린 신. 허겁지겁 다시 화살을 장전하려 하지만, 어느새 다가온 새로운 '그것'이 손을 감아 묶어버린다. 도대체 몇개인지도 모를 무수한 촉수에 온몸이 결박된 신에게, 천천히 일리시드가 다가온다. 새하얗게 날이 선 얼굴에, 예리한 칼날같은 비웃음을 띈 채.

 "내 이름의 의미를 안다면......이렇게까지 무방비하진 않았을 텐데."

 "크, 크윽......이, 이 괴물......!!!"

 그렇게 상대를 매도하지만, 일리시드는 얼굴에 덮인 웃음을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긍정하듯이, 두 팔을 벌리고 마치 연극을 하듯 드높은 목소리로 말한다.

 "아아- 그것이야말로 내 이름. 무수한 팔을 가진, 이계에 사는 고고한 괴물- 주름지고 끈적하고 미끄러운 피부와 빛을 받지 못하는 살갗을 갖고, 여명조차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영원히 자신의 팔을 세어가는 자."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유일한 관객은 '그것'들에 온몸이 결박당하고, 눈이 가로막히고, 코가 틀어막히고, 입이 메워지고, 목이 졸려서- 죽어간다. 그리고, 일리시드의 일인극이 끝날 때쯤은 이미-

 "......일리시드- 그것이 내 이름. 나의 모습. 그러니 그대들은 부디 그것을 명심할지어다."

 남자 13번 신의 숨이 완전히 끊어져 있었다. 질식사해, 얼굴빛이 시퍼렇게 변해있는 시체를 보며, 일리시드는 차가운 냉소를 흘려보낸 뒤, '그것'들을 회수한다. 그의 긴 옷자락 사이로, 빨려들어가듯 모습을 감춰가는 '그것'들. 일리시드는 신의 무기였던 보우건만을 손에 집어들고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신의 허리춤에 꽂혀있던 전기충격기는 그의 시체와 함께 그대로 버려져 있었다.


 [남자 13번 신 사망 - 남은 인원 3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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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여자 12번 로리는, 남자 7번 네코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그가 은신하고 있던 동굴로 잠입해 들어갔다. 아쉽게도 나갈 때 권총을 가져가 버리긴 했지만, 나머지 그의 소지품들은 그대로 팩 안에 들어있었다.

 '우후후......정말 조심성이 없군요.'

 로리는 가방을 뒤져서, 지급된 소지품 중 하나인 물통을 찾아냈다. 그리고는 자신의 품에서 캅셀약을 몇 개 꺼내더니 그것을 하나씩 정성스럽게 벗겨낸다. 그리고 안에 든 가루약을 살살 물에 타넣는다. 대체 몇개나 넣었을까, 물 색이 변하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약을 섞더니, 이젠 그것을 마구 흔들어 용해시킨다.

 '이걸로 완벽하군요.'

 조용히 자신의 성공을 확신하고, 로리는 물통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다. 그리고 조심스레 다시 동굴에서 나가더니 그 주변에서 몸을 숨겼다. 그러자, 부주의하게 콧노래를 불러가며 네코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로리는 숨소리도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네코는 주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채 천천히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털썩 주저앉는다.

 "후우......물을 빼고 나니 목이 마른 걸."

 '......좋았어!"

 네코의 말을 듣고 로리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아니, 사실은 속으로만 환호하려 했지만 몸이 조금 움직이며 버석거리는 소리를 내버렸다. 고개를 돌려 동굴 밖을 응시하는 네코.

 '아차......'

 로리는 내심 식은땀을 흘렸다. 다된 밥에 재를 뿌릴지도 모르는 짓을 해버릴 줄이야.

 '별 수 없네......'

 마음을 굳게 먹는 로리.

 "야, 야옹~"

 실로 어설픈 고양이 흉내였지만, 네코는 그 소리를 듣고 뒤통수를 긁는다.

 "뭐야......고양인가?"

 실로 간단하게 믿어버린다. 아무래도 경계심 따위는 고양이 코딱지만큼도 없는 듯 했다. 그리고는 다시 물통을 찾기 시작하더니, 곧 팩에서 물통을 꺼낸다. 조금 남은 물이 찰랑찰랑하는 소리에서 청량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네코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물통의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물에 어떤 종류의 약이 녹아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

 "푸하-"

 물을 마시고, 다시 뚜껑을 잠근다. 그리고 다시 물통을 집어넣은 팩을 머리에 고이며 바닥에 드러눕는 네코. 로리는 긴장하며 그의 반응을 살핀다. 정체불명의 약- 로리의 무기였던 그것을 복용한 네코에게 과연 어떤 증상이 나타날 것인지 기대하면서.

 '아마도 독약이겠죠, 그래도 무기라고 했으니......후후. 당신은 여기서 죽는 거예요.'

 ......악랄한 악당과도 같은 독백을 읊조리고 있는 작은 여중생이었다.

 "......음?"

 순간, 갑자기 네코가 눈을 뜬다. 예기치 못한 신체의 반응에 당혹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당혹감이 서린 얼굴이, 다시 괴로움 섞인 표정을 바뀐다. 그리고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고개를 처박고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로리의 귀여운 얼굴 위에 기쁨을 가득 담고 벌떡 일어선다. 그 서슬에 큰 소리가 났지만, 네코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오호호호, 독약을 먹은 기분이 어때요? 바보같은 아저씨!"

 승리를 확신하고, 네코에게서 권총을 빼앗기 위해 다가가는 로리.

 "크, 크으으윽......"

 네코의 괴로운 듯한 신음성이, 조금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만든 것인지 로리의 미간이 약간 찌푸려진다. 하지만 곧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네코의 허리춤에 손을 뻗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네코-

 "......이, 이건가?"

 엎드려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네코의 허리춤에서 뭔가 딱딱하고 긴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손으로 붙잡는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 위해 잡아당기지만-

 "어? 빠지지 않아?"

 당황하는 로리. 어째선지 그것-굵고 길고 단단하고 '뜨거운' 것-은 그녀가 당기는 대로 딸려오지 않는다. 마치 몸에 달라붙어있는 것 같은 형국- 아니, 정말로 달라붙어있는 건가?

 "이익, 얼른 내놓으란 말야!"

 뜻대로 안 되자 성깔을 부리며 두 손으로 힘차게 잡아당긴다. 그래도- 여전히 바뀌는 것은 없다. 아니, 뭔가 바뀌고 있었다. 일단, '그것'이 갑자기 더 커졌다. 굵어지고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두 손에서 전해진다. 그리고- 네코가 로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히익-?!"

 죽어가는 줄 알았던 네코가, 마치- 짐승같은 눈빛을 하고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눈에서는 사라졌어야 할 생명력이 가득하다. 아니, 생명력만 가득한 것은 아니었겠지. 시뻘겋게 불타오르는 그의 눈에서는- 어떤 종류의 욕구마저 생생하게 전해져오고 있었다. 로리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눈치채고 겁에 질려 달아나려 한다.

 덥썩.

 그러나- 어차피 어른남자와 어린 여자애. 달아날 수 있을 리 없었다. 금새 붙잡혀서 바닥에 쓰러뜨려지는 로리. 네코는 거친 숨을 헐떡이며, 로리의 가냘픈 몸을 위에서 짓누르고 있었다. 그제서야, 겨우 자신이 빼앗으려고 했던 물건의 정체를 확인한 로리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남자의 허리춤에는, 무려 두 개나 되는 권총이 있었다. 하나는 금속으로 된 진짜 권총.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아직 그녀는 본 적도 없는 미지의-

 ......여자 12번 로리는 자신에게 지급된 무기였던 '정체불명의 캅셀약'의 성분이, 그녀의 기대와 달리 독약이 아닌 '초강력 흥분제'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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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무=스테르는 갑자기 근처에서 묘한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누군가가 이곳에 접근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었기에 조금 당황스럽다고 생각했다. 잠시 고민하더니, 자신의 무기-공구상자-에서 망치를 꺼내들고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자, 냄새가 더욱 진해진다. 무슨 냄새일까? 하무는 문득 그것이 카레 냄새-정말 어이없게도-같다고 생각했다. 혹시 카레 냄새가 나는 유독가스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몸의 반응을 확인한다.

 '심장박동도 정상이고......피부에서도......발진은 생기지 않는 것 같은데.'

 그래도 조심스레, 옷자락으로 호흡기를 막으며 천천히 주위를 탐색한다. 냄새가 진해지는 곳을 찾자, 곧 어딘가의 장소가 나타난다. 바닥에 타일이 둘러지고, 커다란 조리기구와 화구가 설치된 장소. 즉- 병원의 주방이었다. 그리고 그 구석에 걸쳐져있는 큰 솥. 조심조심 내부를 확인하자, 카레냄새의 정체가 드러난다. 아니- 드러나고 자시고도 없었다. 카레냄새가 나는 게 카레인 것은 당연했으니까.

 "......."

 갑자기 맥이 빠졌지만, 그래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왜냐면, 이런 게 있다는 사실은 이곳에 자신 이외의 누군가가 있었다는......

 달각.

 "......!!!!"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하무는 자신이 쥐고 있던 망치를 강하게 뒤로 휘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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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 수가, 3:1 상황인가?"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엘크는 달리고 있는 자신의 다리에 힘을 더했다.

 "늦지 않아야 할 텐데......!"

 레이더에 비친 광점은, 조금 전에 접촉한 두 명과 한 명에 이어서 다시 다른 한 명이 그 세 명에게 접촉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처음의 세 명은, 최초의 접촉 이후에도 흩어지지 않고 모여있는 것으로 봐서, 평화교섭에 성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보인다! 아직 참극이 일어나지 않았기를-!"

 순식간에 달려서, 병원 안으로 뛰어드는 엘크. 무기는 없지만, 그는 맨몸으로라도 싸움을 말릴 생각이었다. 순식간에 광점들이 위치하는 곳-주방-으로 뛰어든다. 모두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 크게 소리지르며-

 "싸움은 그만 두시오!!!"

 "......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뭔가 맥빠지는 대답이었다. 엘크는 순간 발이 미끄러지려는 것을 정신력으로 억제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닥에 깨져있는 유리 파편들을 치우고 있는 빡빡머리의 남자가 보였다. 그리고 커다란 솥에서 뭔가 노랗고 걸쭉한 것들을 퍼담고 있는 여자.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테이블에는, 뭔가를 허겁지겁-자신을 바라보지도 않고- 먹어치우고 있는 두 쌍둥이 남매.

 "당신도 드시겠어요?"

 조금 멍청해진 얼굴을 하고 있던 엘크에게, 여자가 조금 어색한 억양으로 그렇게 권해온다. 그러자, 그제서야 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던 냄새가 느껴졌다. 왠지 먹음직스런 카레 냄새-

 "......그렇게 하죠."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 앉자, 곧이어 유리 파편을 다 치운 빡빡머리 남자가 자리에 앉는다. 왠지 허리춤에는 망치가 꽂혀있다. 그러자 손에 두개의 접시를 들고 다가오는 여자. 접시를 엘크와 빡빡머리 남자의 앞에 하나씩 내려놓자,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 순간, 동시에 접시를 내미는 두 쌍둥이. 어째선지 둘 다 사이좋게 턱끝에 노란 카레를 묻히고 있었다.

 "한 그릇 더 주세요!"
 "항 그륵 더 주에요!"

 ......한 쪽은 아직 입안이 가득한 모양이었지만, 쌍둥이는 동시에 그렇게 외친다. 그러자 여자가 접시를 받아들고 다시 솥에서 카레를 담아온다. 턱 하고 접시가 테이블에 놓이자마자 다시 고개를 처박고 식사에 열중하는 쌍둥이들-

 "......."

 엘크와 빡빡머리 남자-하무=스테르-는, 묵묵히 그 광경을 지켜보다 서로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바야흐로 세기의 정전협정이 맺어지는 순간이었다. ......전쟁이 일어났던 적마저 없던 것 같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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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구의 사나이는,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바이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험로를 달리기에 적합한 오프로드 바이크. 하지만 전복되면서 여기저기가 깨지고 부서져 있었다. 시험삼아 시동을 걸어보지만, 걸리지 않는다. 이젠 못 쓰게 된 것일까.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 주위에 쓰러져 있는 인간. 그리고 또다른 인간. 두 사람의 움직이지 않는 몸이 보였다. 천천히 다가가 상태를 '확인'하자,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둘다 의식을 잃고 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네거티브- 일부 수정. 한 쪽은 곧 생명에 지장이 생길 정도의 출혈을 보이고 있었다.

 거구의 사나이는 재빨리 그의 응급처치를 행했다. 사실 꽤나 난폭한 솜씨였다. 그가 의식이 없었다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빠르지만 대신 가차없는 솜씨로, 잘려나간 어깨부위의 혈관을 면사로 묶어서 지혈하고 붕대를 감는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타박상이 있긴 하지만, 처치를 요할 정도는 아니었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오토바이에서 전복되어 떨어졌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상처가 가볍다. 어째서 그렇게 된 걸까.

 그는 고개를 돌려, 큰 상처를 입은 남자의 아래에 깔리듯 쓰러져있던 작은 소년을 바라보았다. 이 소년이 남자를 구한 걸까. 하지만 그에 비하면 소년의 상처도 무겁지 않았다. 네거티브- 아무래도 상처가 회복된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믿어지지 않는 자연회복율이다. 이 소년의 정체는 뭐지?

 거구는 잠시 사고-해석-에 잠겼다. 그러나 대답은 계측할 수 없는 값이었다. 무한히 네거티브에 가까운 결과였다. 하지만 거구는 천천히 일어나더니, 의식을 잃은 두 사람을 양쪽 어깨에 짊어졌다. 아무리 한쪽은 가벼운 소년이라지만, 동시에 두 사람을 짊어진다는 것은 대단한 힘이었다.

 그 상태로, 그는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한 군데였다. 팔이 잘리는 큰 상처를 입은 남자는, 지금 혈액이 부족한 상태였다.

 남자 11번 오우=소르키르는- 남자 8번 니아와 남자 2번 클라우드를 어깨에 짊어진 채, 수혈할 피와 기재가 있으리라고 예상되는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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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민가- 그러나 주위에는 다른 건물이 존재하지 않는 외딴 집. 그곳에서는 지금, 여자 8번 다크와 여자 9번 하루, 여자 10번 리카가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꽤 커다란 집. 선객이었던 하루가, 이곳저곳을 안내하더니 마지막으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보여준다.

 "그런데, 자물쇠가 걸려이씀니다. 그래서 들어갈 수가 엄씀니다."

 "흐음......?"

 왠지 뭔가 있을 듯한 육중한 철제 문짝. 그리고 그 가운데 나있는 열쇠구멍이 보인다. 잠시 생각하다가, 자신의 '무기'였던 열쇠를 꺼내는 리카. 다크가 깜짝 놀라지만, 리카는 서슴없이 그것을 구멍에 찔러넣는다.

 철컥.

 "어......열렸다......?"

 "우와아아......."

 무심코 해본 듯 했지만, 자신도 진짜 열리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던지 깜짝 놀라는 리카. 다크는 어느새 리카의 등 뒤로 돌아가 있었고, 하루는 긴장된 얼굴로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를 확인하듯 다른 이들의 얼굴을 돌아본 리카는, 천천히 문에 힘을 줘서 그것을 열었다. 기분나쁜 파찰음과 함께 열리는 문.

 ......안은, 어둠이었다. 그것도 깊은 어둠이었다. 한치 앞도 안 보일만큼 깊은 암흑- 가장 담이 센 리카마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마음을 굳게 먹고 안으로 한발한발 내딛어 들어가기 시작하는 일행.

 "이 안에......대체 뭐가 있을까요?"

 "저도 궁금해요, 다크언니......"

 "......꿀꺽."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자, 왠지 조금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뭘까- 왠지 조금은 익숙하기도 한 냄새라고, 리카는 생각했다. 글쎄, 언제였을까. 어디였을까. 어릴 때였을지도 모른다. 아마-

 천천히 팔을 뻗어 앞을 더듬다, 리카는 문득 거칠거칠한 뭔가를 만졌다고 생각했다. 다시 손을 뻗자, 빡빡하고 뻣뻣한 털이 한가득 손에 잡힌다. 그리고- 그때서야 과거회상이 완료되었다. 정말 얄밉게도-

 그건......동물원에서 맡았던 짐승냄새였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에.....? 꺄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아아악!!!!"

 자신이 짐승의 털을 만졌음을 깨닫고 비명을 지르는 리카와, 아무것도 모른채 덩달아 비명을 지르는 하루, 다크. 그리고 그녀들은 뒤돌아 달아나는 리카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제서야 '그것'이 눈을 뜬 듯, 포효한다.

 "크아아아아앙---!!!!!!"

 "꺄아아아아악!!!!" x3

 무시무시한 포효소리를 듣는 순간, 세 여자는 오금이 저려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다. 이젠 이미 달아날 기력마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는 두 발로 걷는 듯한 소리- 잠깐, 두발-?!

 터벅터벅-

 "곰?!!!! 어째서......이런 곳에에에?!!!"

 "히, 히익?!! 잡혀먹힌다아---?!!!"

 "어, 얼른 죽은 척 하는 검니다!!!"

 흐릿한 광원 너머로 나타나는 갈색의 거대한 곰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제각각 패닉에 빠져버린다. 하지만 다시 곰이 포효하는 순간,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리는 그녀들. 그런 그녀들 앞에, 곰은 무시무시한 덩치를 흔들며 뒤뚱뒤뚱 걸어와......

 할짝.

 "......히익?!"

 순간 다크의 얼굴을 핥는 곰의 두터운 혓바닥. 찐득한 침이 다크의 볼에서 흘러내린다.

 "마, 맛을 보는 건가?!!!!"

 발작하듯 비명을 지르는 리카. 그러나 그녀도 곰이 얼굴을 핥는 순간 딱 굳어버린다. 벌리고있던 입에 곰의 침이 조금 들어간 것 같지만, 전혀 눈치채고 있지 못했다.

 "히, 히, 히익......!!"

 드디어 마지막 차례- 하루는 자신을 덮쳐오는 곰의 넓직한 혓바닥의 위용에 벌벌 떨기 시작했다.

 "......や, や, やめて---!!!"

 그만 자신도 모르게 모국어로 그만두라고 외치는 하루. 하지만 아마 그녀도, 설마하니 곰이 자신의 말을 알아들으리라고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으리라. 그러나-

 "......에......?"

 그 순간 바로 딱 멈춰서서 하루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갈색 그리즐리 베어. 곰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하루는, 조심스레 용기를 내어 다시 일본어로 '御座り(앉아)'라고 명령했다. 다크는 그 말이,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견야차'에서 많이 들어본 것 겉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고- 중요한 것은, 곰이 정말로 그 묵직한 엉덩이를 소리내어 바닥에 부딪히며 '앉았다'는 사실이었다. 곰이 아직까지 2족 보행을 고집하고 있었기에, 마치 사람이 바닥에 앉은 것 같이 허리를 꼿꼿이 세운 모습이 되긴 했지만.

 "......."

 아직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던 리카는, 문득 곰의 목 털 사이에 반짝이는 뭔가가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그것에 손을 대었다. 곰은 여전히 젊잖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앉아있는 테디베어같은 폼이긴 했지만.

 "목걸이......MOMO라고 쓰여있어. 이거, 설마 이 곰의 이름인 건가......?"

 "모모......인 걸까요. 그러면, 역시 이 곰은 길들여진......"

 "어디 동물원에서라도 데려온 걸까요......"

 마치 그 말에 대답하듯, 곰이 작게 '크헝-'하는 소리를 낸다. 그 예상치 못한 선물에, 리카와 다크, 그리고 하루는 한동안 그대로 멍하니 서로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거대한 갈색 그리즐리 베어- 설마 이 곰이 무기라는 걸까? 열쇠를 무기로 받았던 장본인이었던 리카의 표정은, 뭔가 잘못된 농담을 들은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by 측하사 | 2008/08/29 21:21 | ┣TS로얄 | 트랙백 | 덧글(0)

TS로얄 - Second Day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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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이다......건물이야, 누나!"

 "안에 먹을 게......혹시 있을까?"

 아리와 노리는 배고픔을 견뎌가며, 서로를 의지해 해변을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성장기 어린이에게 주어진 공복이라는, 더할 나위없이 잔혹한 고문을 이겨가며.

 "......있으면 좋겠지만."

 "있을 거야, 분명."

 무책임하고 대책없는 전망을 하고, 두 쌍둥이는 젖먹던 힘을 짜내어 달리기 시작한다- 더없이 불투명한 그들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기 위해. 그리고......자신들의 배에서 나고 있는 부끄러운 소리를 없애기 위해.

 꼬르륵-

 "......이걸로 34번째 꼬르륵."

 "지금까진 누나가 더 많아."

 "당연하지......누나니까."

 ......뭐가 당연한 건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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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이라는 거점을 확보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2층의 창문으로 휴식을 취하면서도 경계를 소홀히하지 않고 있던 하무=스테르였지만, 창문이 나있지 않은 건물 측면에서 접근-해안선과 이어진-하고 있는 쌍둥이 남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먼저 병원에 도착해서-자신보다 출발이 빨랐던- 1층 구석의 휴게실에서 잠들어 있던 여자 1번 왕=여교의 존재에 대해서도 그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구멍이 잔뜩 나있다는 것도 모른채, 성실하게 경계를 수행하고 있는 하무. 그는 독수리같이 예리한 눈을 번뜩이며, 창문 너머로 펼쳐진 개활지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지는 않은지 샅샅이 살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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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15번 엘크는 지금, 가능한 신중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독행동을 하고 있는 현재, 모두가 힘을 합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리고 유일하게 결집의사를 드러냈던 남자 4번 츠카사가 사망한 현재, 남겨진 희망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모두가 모이기 전에는 모두의 의견을 결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거기다 이대로라면, 분명히 모이자마자 참극이 벌어진다. 살인은 이미 시작된 것이니까.

 엘크는 다시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여다본다. 작은 액정 패널이 전면에 달려있고, 그 위에 튼튼한 뚜껑이 달려있다. 버튼과 디지타이저만 없을 뿐, 소형 PDA와도 닮아있다. 하지만, 그 위에 나타나는 것은 몇개의 점들 뿐이었다. 그리고 그 점은 수시로 움직이거나, 서로 모였다 다시 흩어지거나 하고 있었다. 액정 위에서 빛나는 점들의 수는, 모두 해서 31개. 그리고 그 중 하나는 액정 가운데 가만히 정지해 있다.

 "......사람들이 모이고 있군. 모두 해서......4명인가."

 지도를 꺼내어, 방향과 거리를 대조해본다. 액정화면에는 자세한 축척이 나와있지 않지만, 대충 거리를 추산해보면, 그것은 아마도 지도 상의 적십자 마크와 일치해 있었다.

 "병원인가......싸움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는데."

 엘크는, 자신의 무기인 '레이더'를 품 속에 단단히 집어넣고 달리기 시작했다. 병원에 머물러있는 두 명과, 새로 병원으로 향하고 있는 두 명이 서로 전투를 벌이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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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자신의 무기인 AUG라이플을 압수당하고,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던 니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무기도 없이, 마치 버려진 아내처럼 집을 지켜야 하는 내 신세. 다시금 한숨을 내쉬는 소년의 긍지가 울고 있었다. 아니, 긍지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으응-"

 고양이처럼 허리를 쭉 펴며 긴장을 푸는 니아. 머리를 흔들자, 마치 금빛 물결처럼 짧은 머리칼이 살랑살랑 흩날린다. 가느다란 머리칼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클라우드가 자신의 열쇠에 맞는 물건을 찾으러 나간지도 이미 꽤 오래전. 마을이라곤 해도 꽤나 소규모였기에, 아마 자신이 목적한 것 이외에 다른 것들도 찾고 있는 듯 했다.

 "끙......심심해."

 그때, 누군가가 똑똑 하고 문을 두드린다. 분명히, 집 안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사람의 행동. 니아는 그것이 클라우드라고 생각하고, 문을 열었다.

 "형, 어서 오......?!"

 "여어, 꼬마. 오랜만이다."

 하지만- 문 너머로 나타난 것은, 거친 흑갈색 머리의 남자였다. 금발로 염색하고, 이리저리 뻗치게 만든 머리를 하고 있는 클라우드와 착각하려 해도 착각할 수 없는 남자. 거기다- 가늘고 긴 몸 위에 얹혀있는 가늘고 예리한 얼굴형. 그리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길쭉한 입. 노랗게 불타오르는 것 같은 두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것은, 본능적인 두려움. 그리고 혐오-

 "!!!"

 재빨리 뒤로 뛰어물러나려 하는 니아의 몸을, 예리한 뭔가가 덮친다.

 찌익-

 옷이 찢어지며, 피부에 가늘게 선혈을 흘리고 선 니아. 겨우겨우 뒤로 뛰어 공격을 피해냈지만, 집의 내부에 막혀 더이상 도망가는 것이 무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안색이 창백해진다. 흑갈색 머리의 남자는, 니아가 자신의 공격을 피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운지, 혀로 자신의 '흉기'를 슥 핥는다.

 ......기형적으로 길게 자라난 손톱. 인간의 것처럼 얇게 손가락 끝을 덮고 있는 것도 아니다. 마치 손가락 단말부의 절반을 뒤덮듯이, 반원을 그리며 두껍게 자라난 오른손의 다섯개 손톱. 거기다 길이에 있어서는 웬만한 맹수들마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길어져 있다. 적어도 15cm이상 자라난 손톱. 평상시에 그런 꼴을 하고 있었다면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았을 리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손톱은 아주 가까운 시일 안에 길게 자라난 것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방금 전에 순식간에 자라났거나.

 "베오울프......"

 니아는 방금 생각난 남자의 이름을 작게 중얼거린다. 아니, 남자의 이름만이 아니라 그것은 남자 그 자신의 정체를 상징하기도 했다. 울프는, 니아의 말에 차갑게 웃는다.

 "그래......너와 같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자신의 긴 손톱을 휘둘러온다. 이번에는 왼손도 함께. 어느새 자라난 것인지 알 수 없는 손톱이, 왼손에도 달려있다. 그것을 보면, 그의 손톱이 극히 일순간에 자라난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거기다, 인간으로 볼 수 없는 운동능력. 마치 짐승같은 속도로, 울프는 니아에게 손톱을 휘둘러 온다. 최초는 목을 노린 횡단-

 니아는 겨우겨우 그것을 피해낸다. 작은 덩치를 살려, 앞구르기하듯이 울프의 옆을 지나치며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 어차피 싸움이 안 되는 상황이긴 해도, 그와 같은 근접전투의 달인을 상대로 집 안에 몰린다면 무조건 백전백패. 그런 판단이 적절했던 것인지, 울프가 만족스럽게 웃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칭찬해줄 생각은 없는 것인지, 다시 뒤돌아보며 공격을 가해온다. 상하좌우, 찌르고 베고 긁고 찢고 후벼파낸다. 인간의 전술로서는 차마 짐작도 해낼 수 없을 듯한 기상천외한 공격들.

 울프는 마치, 이것이 자신들의 전투라고 말하는 듯- 그렇게 니아를 천천히 몰아붙였다. 그러나 언제가 되어도 니아는 반격을 해오려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치명상만은 피해내지만, 반격은 커녕 전신에 베인 상처만을 점점 늘려가고 있을 뿐이다. 잠시 공세를 멈추고 그런 니아의 모습을 바라보던 울프는, 기묘한 표정을 띄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표정.

 "......뭐냐, 꼬마. 어째서 변화하지 않지? 만월도 아니고, 거기다 힘도 어째선지 약해져있어서 전변화는 무리일지 몰라도, 손톱을 내는 것 정도는 가능할 텐데?"

 "......"

 그러나 니아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 침묵이, 손톱마저 낼 수 없다는 대답임을 깨달은 울프는, 얼굴을 차갑게 굳힌다. 방금 전의 반가워하던 태도와는 명백히 다른, 마치 벌레를 보는 것 같은 눈빛.

 "그래......네놈, 알고보니 어처구니없는 애송이였구나. 모자란 힘을 제어해, 손톱만을 자라나게 하는 정도도 할 수 없을 줄이야. 이래서야......새끼 고양이도 안 되겠군."

 흥이 깨졌다는 듯, 콧방귀를 뀐다. 그리고 손톱을 더욱 더 자라나게 하더니, 서서히 니아를 몰아붙인다.

 "뭐, 됐다. 네놈이 아니라도 재미있을 것 같은 녀석은 또 있었으니까......일족의 명예를 더럽히지 말고 이만 죽어라."

 마치 자비를 베푸는 양, 그렇게 말하며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혀오며 손톱을 휘두른다. 조금 전은 확실히 어느정도 봐주고 있었던 듯, 니아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속도로 손톱이 정확하게 목을 노려 좌우에 날아든다. 아마도, 피하지 못한다면 가위질당한 것 마냥 목이 날아가 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마치, 정원의 가지라도 치듯. 그 정도의 말도 안 되는 예리함과 힘이 실려있었다.

 "아악!!!"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니아.

 타타탕!!!

 그러나, 웬 총소리와 함께 눈 앞의 기척이 자신에게서 멀어져간다. 쳇- 하고 작은 소리와 함께 니아에게서 거리를 벌리더니, 민가 한채를 엄폐물 삼아 몸을 숨긴다.

 "이쪽으로 뛰어, 니아!"

 그리고- AUG 라이플을 이쪽으로 겨냥한 클라우드가 니아에게 소리친다. 총구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를 보지 않더라도, 그가 니아를 도와준 것은 틀림없었다. 니아는 생각할 것도 없이 클라우드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클라우드는 니아의 어깨를 잡아 당겨 자신의 등 뒤에 숨기고, 총을 들어 울프가 몸을 숨기고 있는 쪽을 향해 겨냥했다.

 "너, 부끄러운 줄 알아라! 다큰 어른이 어린애를 공격하다니!"

 정말로 화가 난 듯, 얼굴을 붉히며 소리치는 클라우드. 그러자 멀리서 큭큭큭 하고 웃는 소리가 들린다. 울프의 목소리가, 웃음을 멈추고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클라우드를 조롱하듯 대꾸한다.

 "......너, 정말로 그 꼬마가 평범한 '보통의 꼬마'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그 말에, 뭔가를 확인하듯 니아를 슬쩍 바라보는 클라우드. 그 순간 니아는 조금 몸을 움츠려버렸지만,  니아의 손에서는 울프처럼 긴 손톱이 자라나있진 않았다. 클라우드는 다시 고개를 돌리며 외친다.

 "물론이지, 네 말대로 평범한 꼬마는 아니야."

 ".....!!!"

 깜짝 놀라 클라우드를 바라보는 니아. 그러나 클라우드는 계속해서 외친다.

 "평범하긴 커녕......열쇠 따위에 항복해버리는 멍청한 꼬마지!"

 니아는 자신의 뺨이 붉어졌다고 생각했고, 곧이어 멀리서 울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클라우드는 그 소리의 위치를 가늠하면서, 서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달린다, 니아!"

 그 말과 함께, 정말로 달리기 시작하는 클라우드. 니아는 영문도 모른채, 그가 손을 잡고 이끄는 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발소리를 들은 것인지, 노호성과 함께 울프가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평범한 인간에게 항복하다니, 더이상 일족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도록 여기서 죽여주마. 꼬마!!!"

 그러자 달리면서 그대로 상반신을 돌려 AUG 라이플을 3점사하는 클라우드. 그러나 트리거를 당기기도 전에 울프는 총구와의 일직선 상에서 계속 벗어나 있었다. 달리다가 엎드려 네발로 뛰기도 하고, 건물 옆으로 숨었다가 지붕 위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인간의 수준을 넘은 체술.

 "한발 정도는 맞혀봐라, 인간!"

 비웃듯이 그렇게 외치며, 점점 거리를 좁혀온다. 그러자 클라우드는 재빨리 멈춰서며, 라이플의 조정간을 점사에서 연사 쪽으로 돌린다.

 "바라는 대로 해주지!"

 "!!!"

 남아있는 탄환 전부를 쏟아부은 풀오토 소사. 한두번의 회피로는 완전히 피해낼 수 없다고 생각한 울프는, 어쩔 수 없이 건물 옆으로 뛰어들어 몸을 숨겼다. 건물 벽을 두드리는 탄환의 비. 그러나 곧 그것은 오래 유지되지 못하고 끝나버린다. 탄창의 재장전에는 시간이 걸린다. 이제야 말로 끝장이다- 울프는 그렇게 승리를 자신하며 건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부르르르릉- 

 "뭣?!"

 하지만, 그런 그를 반기는 것은 웬 오토바이의 시동음이었다. 오프로드 사양인 듯, 길게 뽑혀나온 포크를 가진, 카울이 거의 덮혀있지 않은 얇고 심플한 스타일의 바이크. 그러나 그 엔진만은 얕볼 수 없는 것인 듯, 무거운 진동음을 울리며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자신의 무기였던 '열쇠'를, 오토바이의 시동장치에 꽂은 클라우드는 울프를 비웃듯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럼, 나중에 보자고!"

 쾌활하게 그렇게 소리치며, 클라우드는 바이크의 스로틀을 당긴다. 뒤에 앉은 니아는, 넘겨받은 AUG 라이플을 가슴에 품은 채, 클라우드의 허리를 붙잡고 있었다. 엔진음과 연소가스만을 남긴 채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바이크.

 가만히 서서 멀어져가는 사냥감을 바라보던 울프는, 순간 허리를 숙이며 무릎을 꿇는다. 가만히 보니 옆구리에서 피가 흠뻑 배어나오고 있었다. 차갑게 불타오르는 분노를, 잠재우려 노력하는 울프.

 "......처음에 맞았던 건가, 꽤 깊은데."

 니아를 공격하려는 순간, 등 뒤에서 울린 작은 격철음을 듣고 옆으로 도약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울프. 그런 상처를 입고서도 지금까지 전투를 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지만, 울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현재는 회복능력도 저하되어 있지만, 오랜 수라장을 거친 그에게 이 정도 상처는 핸디캡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뒤를 쫓고 있는 녀석과 지금 마주치는 것은 그다지 즐겁지 않다. 방금 사냥의 우선순위가 바뀌었으니까.

 울프는 자신을 조롱한 클라우드의 얼굴을 단단히 머리속에 기억하며, 숨어서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 가까운 숲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부르르릉-

 클라우드는 조금 전 자신들과 싸움을 벌였던 사내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허리를 감싸안고 있는 귀여운 미소년-니아-이 평범한 꼬마가 아니라는 그의 말. 그리고 니아와 자신을 '일족'이라 칭한 것 같은 그의 말. 전부가 그에게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순간 니아 자신에게 그것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방금 습격당해 겁에 질려있을 꼬마에게 그런 걸 캐묻는다는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클라우드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스로틀을 조금 더 비틀었다. 엔진 흡기량이 늘어나며, 더욱더 거센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한다.

 두 사람이 타고있는 바이크가 드문드문 서있는 나무 사이로 들어갔다. 목적지는 딱히 정해둔 것이 없었지만, 일단 울프에게서 충분히 떨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클라우드는 방금의 상념을 떨쳐버리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오토바이를 곧바로 직진시켰다. 그리고 바로 그때-

 "사람?!"

 순간 나무 그림자 옆에서 흔들리듯 미끄러져 나온 사람의 그림자. 허수아비처럼 곧게 서있었지만 손에는 뭔가 긴 물건이 들려있다. 아주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기분나쁜 귀기를 흘리는 예리한 금속광택. 클라우드는 재빨리 니아에게서 AUG 라이플을 빼앗듯 잡아챘다. 오른손으론 스로틀을 유지한채, 왼손으로 라이플을 겨냥한다. 진동으로 흔들리는 총구.

 타타타타타-

 조금 전 재장전한 탄창에 채워진 탄환이, 풀오토 소사로 쏟아갈겨진다. 그러나 소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바닥에 엎드리듯 몸을 낮추는 상대. 그리고 클라우드가 쥔 라이플은, 연사의 반동으로 총구가 위로 들려버린다. 힘이 약한 왼손만으로 라이플을 쐈으니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 탄창이 다 떨어질 때까지 쐈음에도 맞추지 못했음을 깨달은 클라우드는, 오른손의 스로틀을 끝까지 당기며 남자의 옆을 통과하려 시도했다.

 부르르릉!

 슈칵-!

 "으윽?!"

 그러나, 남자와 스쳐가는 순간 예리한 섬광이 바이크의 측면을 스치고 지나간다. 왼쪽 사이드미러가 뒤로 튕기듯 날아간다. 그리고 클라우드의 왼손에 쥐여있던 AUG 돌격소총도 하늘을 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클라우드는 순간적으로 눈에 불이 튄다고 생각했지만, 오른손'만'으로 끝까지 조향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뒤에 앉아있던 니아는 남자와 스쳐지나가기 직전 눈을 감아버렸기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순간 니아의 후각에 뭔가 진한 비린내가 느껴졌다. 최초는 후각. 그리고 그 이상은 곧 시각으로도 깨달을 수 있었다. 바이크가 달려나감에 따라 앞에서 부딪혀오는 맞바람에, 마치 뿌연 안개처럼 붉은색 액체가 섞여있었다.

 "형......?"

 그러나 그 쾌활하던 청년은, 니아의 말에도 대답해오지 않는다. 그리고 니아는 순간, 뭔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클라우드는, 조금 전부터 오른손만으로 바이크의 핸들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은 라이플을 들기 위해서였던 것이고, 남자가 뒤로 멀어져버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아니, 애초에 지금은 들고 있을 라이플도 없었다. 그러면 어째서......?

 철퍽.

 순간, 심장박동을 따라 울컥거리듯 뿜어져나온 대량의 피가 니아의 안면에 부딪힌다. 피가 뿜어져나온 위치는 클라우드의 왼쪽 어깨- 그제야 그곳을 주시한 니아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형......팔이......왼팔이......!!!"

 어깨에서부터 절단되어 떨어져나간 클라우드의 왼팔. 니아가 경악해서 소리치지만, 클라우드는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아니, 그는 방금 전부터 뭔가 말하고 있었지만, 그건 거의 헛소리에 가까웠다.

 "......멈출까 보냐......이 내가......멈출까 보냐......"

 "형, 형, 형!!!"

 기어코 죽은 듯 고개를 떨구고만 클라우드를 뒤에서 흔드는 니아. 그러나 클라우드는 다시 의식을 찾지 못했고, 스로틀을 쥐고 있는 그의 오른손이 미끄러짐과 동시에 바이크는 제어를 잃고 전복했다. 튕겨나듯 날아간 니아와 클라우드는, 마치 버려진 인형처럼 바닥에 곤두박질쳐 그대로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저 정도면 아마 죽었겠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라이오우는, 자신의 무장인 무라마사에 묻은 피를 가볍게 털어내 검집에 납도하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제대로 하자면 확인을 해야겠지만, 그에게는 새로운 사냥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에 만났던 흑갈색의 머리를 기른 짐승같은 사내가 충분히 약해져있길 기대하면서, 라이오우는 바닥에 떨어진 AUG 라이플을 주워들었다.

 ......아직도 그것을 단단히 움켜잡고 있는, 잘려나간 사람의 왼팔을 발로 짓밟아 떼어내면서.


.
.
.


 "......안에 누구 계신가요?"

 "언니, 쉿!"

 리카는, 문을 앞에 두고 소리내어 누가 있는지 묻고 있는 다크를 나무랬다. 아무리 현실감각이 모자라다 해도, 혹시 나쁜 사람이 안에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는 다크가 바보같다고 생각했다. 다크는 그제야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인지 입을 손으로 가렸다. 그런다고 해서 이미 입 밖에 낸 말이 없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아무도 없는 걸까요?"

 "그, 글쎄요....."

 리카는 문 너머로 아무 소리도 안 들려왔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플라스틱 권총 -아마 장난감이라고 생각되는-대신, 오는 길에 주워온 긴 나무막대기를 단단히 손에 쥐었다. 언제라도 그것을 휘두를 수 있는 준비를 하고 문을 살그머니 연다.

 끼이익-

 그리고 문이 끝까지 열린 순간, 뭔가가 빙글빙글 돌면서 그녀들에게 안면으로 날아왔다-!

 "꺄아악?!"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주저앉는 다크. 그러나 리카는 마음을 굳게 먹고, 빙빙 돌면서 날아온 그것을 막대로 위로 쳐낸다. 깡! 하는 소리를 내며 튕겨나는 원반 모양의 물체. 설마하니 그것은 회전톱날이기라도 했던 것일까? 그것에 맞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자 그만 리카의 얼굴이 핼쓱해진다.

 "누구야! 이런 걸 던진 게!"

 "히끅?!"

 소리치자, 마치 그에 대답하듯 딸꾹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방향은 문의 정면에서 조금 옆. 리카가 시선을 돌려보자, 두 손에 둥그런 원반을 쥐고 있는 소녀가 보인다. 앞치마를 두르고 어딘가의 종업원같은 차림을 하고 있는 그녀는, 리카와 시선이 마주치자 마음을 굳게 먹고 눈을 부릅뜨더니 손에 든 원반을 손가락 끝으로 잡고 돌리기 시작한다.

 "어, 어서 항복하지 않으면 이 그레이트 DX 스피닝 디스크가 당신들을 공격할 껌니다!"

 ......껌니다? 왠지 약간 어색한 한국말이었다. 뭔가 이상하게 거창한 이름은 그렇다 치더라도. 리카가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 소녀는 위협을 가하려는 듯 자신이 돌리고 있던 원반에 더욱 속도를 싣는다. 스스로 공중에 떠오를 것처럼 빠르게 붕붕 돌아가는 원반.

 붕붕붕붕-

 "......"

 "......"

 짝짝짝-

 멋지게 돌아가고 있는 원반에, 다크가 멍하니 바닥에 주저앉은 채 박수를 친다. 그러자 소녀가 그만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버렸다. 그 서슬에 원반이 손 끝에서 떨어지려는 찰나-

 "......얍!"

 멋드러지게 발끝으로 받아낸 원반. 거기다 회전도 계속되고 있다. 다크와 리카가 동시에 놀라며 오오- 하고 감탄한다. 그러자 소녀는 다시 새로운 원반을 꺼내 양 손에 돌리기 시작. 최종적으로는 정수리 위에 소품을 사용해서 얹은 것까지 포함해서 총합 4개의 원반을 돌리고 있었다.

 "하얏!" 

 마무리로, 기합성과 함께 돌리고 있던 모든 원반을 띄워올려 공중에서 차차착 쌓이게 만든 다음 한손에 받아들며 허리숙여 인사하는 소녀. 그 퍼포먼스에, 리카와 다크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열광적인 반응에 소녀는 쑥쓰러워했다.

 "......"

 "......"

 "......"

 그리고, 쇼가 끝나자 참을 수 없는 뻘쭘한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결국 소녀가 다시 원반을 돌릴까 하고 마음먹는 순간, 리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난......리카, 이 언니는 다크. 넌 누구야?"

 "......왠지 처음 보는 아가씨 같아요."

 "응,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야 당연했다. 소녀와 그녀들은 통성명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소녀는 잠시 심호흡을 한 다음, 대답했다.

 "하루라고 함니다. 잘 부탁드림니다, 손님 여러분."

 "......손님?"

 "아......죄송함니다. 제가 실수, 해씀니다. 예전에는 종업원이었기 때문에......"

 하루가 그렇게 대답하자, 리카는 그제야 그녀의 복장을 눈여겨본다. 그제서야 뭔가 기억이 난 듯, 다크가 손뼉을 쳤다.

 "아, 그때의 종업원 씨!"

 "네, 마씀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왜 술집 종업원이 같이 끌려왔는지를 묻는 리카. 하지만 하루는 그저 맥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저도 잘, 모르게씀니다......"

 "......"

 "......"

 왠지 침울해지는 분위기를 일신하고자, 리카가 바닥에 떨어져있던 하루의 원반을 손으로 집어들며 화제를 바꾸려 시도했다.
 
 "이거, 그레이트......디럭스 뭐라고 하는 거야? 강력한 무기야?"

 "아......그게, 그러니까......"

 하지만 어째선지 얼굴을 붉히는 하루. 고개를 숙이고, 꾹 다문 입술 사이로 작은 목소리로 고백한다.

 "그......그냥 평범한......쟁반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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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측하사 | 2008/08/29 21:21 | ┣TS로얄 | 트랙백 | 덧글(0)

TS로얄 - Second Day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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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와 노리, 이 어린 두 이란성 쌍둥이 남매는 벙커에서 출발한 직후부터 그렇게 빠르게 이동하지 못했다. 누나인 아리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평소같은 활발함을 발휘하지 못했고, 결국 남동생인 노리가 누나를 이끌어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출발점에서 곧장 남쪽으로 내려온 두 사람은, 넓은 개활지 위에 드문드문 뿌려진 큰 바위들 사이에 몸을 숨겨가며 계속 직진했다. 그리고 만난 것은 백사장과 바다. 평소 노는 것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바다에 뛰어들어 해수욕을 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진짜 육지가 안 보여......"

 그렇게 멍하니 중얼거리는 아리를 보며, 노리는 누나의 손을 잡고 해안선을 따라 서쪽으로 계속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대로 올라가면 아마도 병원이 나오겠지만, 그 두 사람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기야, 아무리 가도 바위 말고는 아무것도 안 나오는 쓸모없는 개활지로 향했던 덕분에 그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은 것이었지만.

 "배고파......"

 각자 글러브와 야구공, 배트만을 손에 쥐고 걷고 있는 두 사람. 그들은 지급된 가방에, 지도와 식료품이 들어있는 작은 팩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팩이 남겨진 커다란 가방은, 지금 그들이 합류한 지점에 버려져 있었다.

 "이러다간 살해당하기도 전에 굶어죽고 말겠어......"

 ......여자 14번 아리와, 남자 14번 노리. 두 사람의 미래는, 현재 지극히 불투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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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2번 스티는, 현재 가장 멀리 위치한 목표물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지도에 나와있는, 최북단에 위치한 학교라는 표식. 출발도 남들보다 빠른 편이었던 그녀는, 자신이 학교에 은신한다면 다른 이들이 자신을 찾아내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어쨌든 학교다. 교실이 수십개는 있을 것이다. 교무실도 있을 거고, 숙직실, 양호실, 생활지도실, 화장실, 분리된 공간은 얼마든지 있다. 설사 누가 들어온다 해도 발각되기 힘들 뿐 아니라, 틈을 타서 빠져나가는 것도 용이하다. 그런 자신의 생각을, 스티는 신뢰했다.

 그래서- 지금 그녀는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가는 도중에 한번 밤을 보냈지만, 이틀째인 오늘은 분명히 도착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멀리서 커다란 학교같은 건물이 보이고 있었다. 그녀는 팩을 등에 메고, 달리기 시작했다. 스커트의 주머니에는, 그녀의 지급품인 은색의 버터플라이 나이프가 날개를 접은 채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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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카 씨,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다크가 불안한 듯한 목소리로 묻자, 리카가 지도에서 눈을 떼며 대답했다. 그녀의 지급품이었던 열쇠가, 줄에 매달려 목에 걸려 데롱거리고 있다.

 "언니,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잠자고 싶지 않아요?"

 그러자 다크는, 흙바닥에서 이불도 없이 노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어제의 끔찍한 경험을 떠올렸다. 날씨가 춥진 않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흙이 옷 사이로 기어드는 감각이 참을 수 없었다. 지붕이 있는 지난날의 생활을 기억해내자, 다크의 눈이 몽롱해진다.

 "지붕......좋네요......"

 "그렇죠? 그럼, 가자구요."

 리카는 다크를 이끌고, 지도에 나와있는 집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그곳에 이미 선객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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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12번 도암은 주의깊게 나무 사이를 헤치며 걷고 있었다. 비록 풍경화가 아닌 초상화가 전문이긴 하지만, 돈을 받고 그림을 그려주는 프로 화가로서의 안목에 따르면 이 섬의 풍경은 꽤나 조잡했다. 마치 일부러 조성해놓은 것 마냥,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조악한 정경.

 그는 불유쾌해지는 기분을 억지로 고양시키려 노력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지급품인 페인팅 나이프-그림을 그리는 화구-를 쥐고 주위를 세심히 관찰했다. 조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겟지만, 그가 가진 페인팅 나이프는 평범한 것들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기에, 어느정도 신뢰할 수 있는 무장이 될 수 있었다. 도암은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날이 세워진 페인팅 나이프를, 땀이 배어든 손바닥으로 미끄러지지 않게끔 단단히 움켜잡았다. 밀리미터파 레이더처럼 잘 단련된 그의 안목이, 마치 원경을 보듯 초점을 멀리 두며 주변을 정찰한다.

 "......사람?"

 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고, 그저 팩만 하나 달랑 메고 걷고 있는 여자. 붉은 색의, 예쁘게 말린 머리가 마치 프랑스 롤빵처럼 생겼다. 분명히, 시오라는 이름의 여자라고 기억했다. 도암은 그녀가 위험스럽지 않다고 판단하고, 천천히 그 뒤를 쫓았다. 혹시나 놀라서 공격을 가해올 위험을 대비해, 기척을 내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그리고 어느정도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도암은 문득 시오가 뒤를 돌아보려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재빨리 몸을 숨겼다. 그러자 몸을 숨긴 나무 너머로 시오의 얼굴이 보였다. 귀엽게 웃고 있는 얼굴.

 '......어?'

 순간, 도암은 참을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어째서......웃고 있지?'

 주변을 살펴보면서도,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는 미소. 가만히 생각해보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시종일관 띄우고 있던 그 미소. 그녀를 귀여운 여자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원인. 어째선가 조금 가식같다고도 느끼게 만들었던 과도한 귀여움.

 ......하지만, 어째서 지금 같은 때에도 그런 얼굴을 하고 있지? ......아무도 보지 않는,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도 보지 않는데, 가식같은 것이 어째서 필요하지?

 도암은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건, 가식같은 것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가면- 인간의 '흉내'를 내기위해서 항상 덮어쓰고만 있어야만 하는, 본래 자기 것이 아닌 한겹의 피부.

 바스락.

 그순간,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가 마른 풀을 밟은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때- 도암은 시오의 얼굴이 조금 바뀌는 순간을 목격하고 말았다. 조금, 아주 조금- 하지만, 그녀와 만난 이후 실로 처음으로 바뀐 표정. 그것은 공포도, 분노도, 절망도, 체념도, 심지어......살의마저도 아니었다.

 ......그것은- 순수한 환희였다.

 자신의 얼굴에 덮어씌워진 깨끗한 웃음을 지워없애고, 다시 평소와 같은 미소를 띄며 여자 11번 시오가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도암은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다리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공포가 몸을 잠식했다. 더운 날씨도, 추운 날씨도 아니었건만 등줄기에 식은땀이 솟는다.

 도암은......방금 자신이 본 것이 정말 인간이었는지 도저히 자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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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5번 타미는, 걷다가 부주의하게 마른 풀을 밟아 소리를 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낭패했다고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손에는 긴 펌프액션 식의 엽총이 들려있었다. 민간용의, 허가를 받아 사냥용으로 쓸 수 있는 산탄총. 라이플 따위에 비하면 좀 약하긴 해도, 충분히 강력한 무장이다. 현역 군인인 타미에겐 좀 어색하긴 하지만.

 '최소한, 여자들만이라도 내가 지켜주지 않으면......'

 그는 현재, 그런 생각에 입각해 행동하고 있었다. 자고로 군인이란, 총을 든 상대-그것도 되도록 남자-가 아니면 상대하지 않는다. 군인과 민간인은, 전투능력에서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민간인이, 군인인 자신보다 총을 잘 쏠 수 있을까? 영점이나 잡으면 다행이다. 일반인들이 부비트랩이나 폭발물의 취급을, 자신보다 용이하게 할 수 있을까? 그게 뭔지 깨달을 수만 있어도 우수한 셈이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 자신보다 이 게임에서 유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내가 연약한 여자들을 지켜줘야 하는 것은 일종의 의무다- 타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브레이브 어메리칸- 오, 지아이 죠-'

 되먹지도 않은 작사로, 소리내지 않고 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타미. 다시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며, 습관처럼 바닥에 깔려있을지 모를 인계철선을 주의하면서 길을 걷는다. 그렇게 어느정도나 이동했을까, 순간 타미는 뒤에서 기색이 느껴진다는 것을 깨닫고, 재빨리 먼저 총구를 등 뒤로 향하면서 이어 몸을 뒤로 회전시켰다.

 "Freeeez-!"

 우리 말로 하자면 '움직이지 마!' 정도가 될 말을 소리치는 타미. 그러자 수풀 속에서 웬 여자가 불쑥 튀어나온다. 빨간 머리를 둥글게 말고, 옅은 미소를 띈 귀여운 여자.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다. 타미는 상대가 비무장의 여성이라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총구를 내렸다.

 "아, 미안합니다! 적이라고 생각하고 그만......"

 "......괜찮습니다."

 굉장히 침착하게 대꾸해오는 여자. 타미는, 그것이 그저 그녀가 너무 놀라버렸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짐작했다. 사실, 너무 놀라버리면 오히려 전혀 놀라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도 종종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혼자이십니까?"

 "......네."

 타미는 조금 고민한 뒤, 말했다.

 "그, 그러면......이제부터 저와 함께 다니지 않겠습니까?"

 "......"

 여자가 침묵하자, 타미는 자신이 오해살 만한 말을 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그게 아닙니다! 전혀 나쁜 속셈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I'm Gentleman! 신사, 그래요, 신사입니다! 이래뵈도, 저멀리 N.Y에 애인도 있습니다! 믿어주세요!"

 "......애인이 무슨 상관이라도?"

 물론 상관은 없다. 직접적인.

 "아, 무, 물론 상관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솔로의 외로움에 지쳐 함부로 여자를 덮치는 Guy가 아니라는 것을 Lady께 알려드리고자......!"

 미국인답지 않은 현란한 한국말로, 전세계 남성의 35%(추정)를 적으로 돌리고 있었다.

 "......제가 죽지 않게 지켜드리겠습니다! 그, 그러니까......함께 다니지 않으시겠습니까?"

 "죽지 않게?"

 "Y, yes! of course!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러자, 여자가 입가에 걸린 미소를 조금 짙게하며 웃는다.

 "좋아요."

 "그, 그러면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I'm Frontman! 제 뒤만 따라오세요! 앞에서 덤벼드는 놈들은 모조리 날려버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여자의 귀여운 얼굴에 조금 붉어진 자신의 뺨을 숨기려는 양 뒤로 돌아선다. 그리고 두 손에 단단히 엽총을 움켜쥐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한다. 그러자 곧 뒤에서 뒤따라오는 발소리가 이어졌다. 자박자박하는 가벼운 발소리. 타미는 그녀의 귀여운 얼굴을 떠올리며, 그녀를 어떻게든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그러고보니 name을 묻지 않았군.' 

 그렇게 생각하고, 그는 걸음을 멈추고 뒤로 빙글 돌아선다.

 "Lady, 실례지만 이름이 어떻게 되십......"

 하지만,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다. 타미는 순간, 여자가 자신에게 들이대고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그녀의 '무기'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조금 힘든 일이었다. 왜냐면 그녀는 자신의 앞에 나타날 때부터 빈손이었고, 그것은......

 '......그러고보니 어째서 처음은 빈손이었지......? 이런 때라면 겁이 나서라도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정상 아닌가......?'

 대답은 간단했다.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 선제공격을 받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해가며, 자신의 무장을 팩 안에 숨겨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무장이 지금 보는 것처럼 지극히 위험한 것-사냥용의 보우건-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타미는 아마 이렇게까지 조심없이 자신의 배후를 내주진 않았을 지도 모른다.

 쉬익-!

 타미가 최초로 들은 것은,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이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현이, 트리거에 연동된 기계장치에 의해 풀려나서, 짧은 금속제 화살을 쏘아낸다. 전혀 느끼지도 못했던 살의의 결과물이, 타미의 목에 곧바로-

 쿡!

 "......어-"

 마치 햄에 날카로운 칼을 찔러넣는 것 같은 작은 소리가 울리자, 타미의 목 한가운데에는 마치 거기서 돋아난 것처럼 화살의 뒷부분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는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어보려 했지만, 가능한 것은 기도에 뚫린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말조차 되지 않는- 마지막 숨소리 뿐이었다.

 "--------"

 그리고 그런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붉은색 롤 헤어스타일의 귀여운 여자는-

 "즐겁군요, 이건. 생각보다 훨씬 더......"

 ......환희로 점철된, 극상의 미소를 안면에 띄워올리고 있었다.


 [남자 5번 타미 사망 - 남은 인원 3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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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17번 라이오우는, 어제부터 계속 한명도 처치하지 못했기에 슬슬 마음이 조급해질 만도 하건만 그래도 여전히 냉정을 유지하며 사냥감을 찾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의 무기가 근접전에서는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해도 일단 간격 밖에서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면, 웬만한 권총보다 불리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 핸디캡을 극복하려면, 매복이나 기습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방식은, 사실 효율이 꽤 낮은 편이다. 안전성에서는 우수할지 몰라도.

 '......사냥감일까. 아니면......'

 라이는 지금 자신이 매복해있는 나무 아래를 지나가고 있는, 마치 뻣뻣한 가시같아 보이는 긴 흑갈색 머리를 가진 남자의 전투력을 평가하고 있었다. 사냥감일 것인가, 아니면 사냥꾼일 것인가. 전자라면 이대로 사냥해도 그만이다. 하지만 후자라면 그냥 놔두라는 것이 클라이언트의 지시였다. 그 쪽이 훨씬 더 재미있다는 이유다. 약한 놈들만 남아도 볼 거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니까. 뭐가 어찌되었든 라이로서는 까다로운 지시였다.

 '......그냥 보낸다. 놈, 운이 좋았군.'

 상대를 헌터라고 판단한 라이오우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상대를 헌터라고 인정하긴 했지만, 그가 자신보다 전력상 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어쨌거나 상대방은 제대로 된 무기도 갖고 있지 않는 맨몸이었으니까. 그 시점에서 이미 그는 상대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우를 범한 셈이었지만, 그건 그를 탓할 일만은 아니었다.

 "언제까지 숨어서 보고 있을 셈이지, 쥐새끼."

 순간,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그렇게 말하는 남자. 라이는 그것을 무시하려 했지만, 남자의 눈이 똑바로 자신의 은신처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날듯이 나무에서 뛰어내려 왔다. 손에는 그의 무장인 무라마사가 칼집에서 빠져나와 곧게 쥐어져 있다. 자연스럽게 서서, 검을 비스듬히 아래로 늘어뜨린 자세는 방어에 유리한 하단자세. 라이는 상대의 공격에 대비하며 천천히 말을 걸었다.

 ".....감이 썩 좋군."

 "흥. 그뿐 아니라 코도 좋지."

 비웃듯이 대꾸하는 상대방. 자세히 보니, 눈빛이 짐승처럼 흉흉했다. 마치 늑대가 두 발로 일어서서 걷는 것이 아닐까 싶은 사나운 외양.

 "나와 싸우고 싶나?"

 남자 16번 베오울프는 그 말에 씩 웃었다. 눈 앞의 남자-자신의 바로 다음 출발한 남자 17번 라이오우-가 벙커 안에서 총격을 받았을 때의 일이 연기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때의 인공혈액에서는 신선함이 전혀 느껴오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야 이 남자의 정체 따윈 거의 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상대가 되진 않는다. 이기는 건 자신이다. 필경, 재미없는 싸움이 될 것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자신도 상처를 입을지 모른다. 그러면 이 다음의 싸움에 제대로 임할 수 없게 된다. 울프는 그런 계산을 하고 있었다.

 "......다음에 보기로 할까."

 대답은 없었다. 서로 간의 계산을 깔고, 두 치명적인 발톱을 가진 남자는 서로 등을 돌렸다.

 "......"

 그리고, 울프가 사라지고 난 뒤에 라이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 그를 쫓기 시작했다. 클라이언트의 지령은, 약한 놈부터 없앨 것. 그렇다면- 전투 후 상처입고 약해진 녀석을 처치하는 것은 지시에 어긋나지 않는다. 라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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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12번 로리는, 계속해서 어떤 남자의 뒤를 쫓고 있었다. 목적은 상대방의 무기. 엄청 커다랗게 보이는 회전식 권총은, 마치 서부극의 카우보이같아서 상당히 강해보였다. 사실 그것이 44구경의 매그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녀가 그것을 손에 넣는다 해도 강력한 반동 때문에 제대로 쓰지도 못할 것은 당연했지만, 그녀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제 남자가 자고있는 동안에 몰래 총을 빼앗으려 했지만, 그는 자신의 바지춤에 총을 꽂아두고 잠들어 있었다. 차마 남자의 가랑이에 손을 댈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그것을 훔쳐내지 못했고, 결국 하루가 지난 다음에도 계속 그의 뒤를 쫓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의 서투른 미행실력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그녀가 자신의 뒤를 쫓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마른 나뭇가지를 실수로 밟아 벼락 떨어지는 듯한 소리-그녀의 입장에서-를 내고 난 뒤에도 고양이 울음소리만 내면 무마할 수 있던 형편이었으니까. 도대체 이런 섬에 고양이가 어디 있다고-

 '후후후, 정말 바보같이 만만한 남자로군요. 당신을 없애고, 그 총은 이 내가 갖겠어요.'

 현재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이 작은 마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가루약의 캅셀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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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낫, 둘, 셋, 넷-"

 산의 정상- 높은 소나무 가지에 도롱이벌레처럼 매달려 있는 하나의 그림자가 있었다. 검은 머리를 산발하고, 근육질로 뒤덮인 탄탄한 육체를 과시하듯 상반신을 벗어제끼고 있는 남자. 잘 발달된 대흉근이 마치 여성의 가슴처럼 두드러져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성 같은 것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마치 남성성의 극단의 예를 보여주고 있는 그는, 바로 남자3번 고우키.

 "둘, 둘, 셋 넷-"

 하나에서 열까지 센 다음, 또 다시 열을 세면서 거꾸로 매달린 자세에서 윗몸일으키기를 한다. 그의 상반신이 위로 끌어올려질 때마다 복근이 팽팽하게 당겨져, 뚜렷한 왕자를 그려낸다. 그렇게 하길 20회. 총 200번의 윗몸일으키기를 끝내고서야 그는 나무가지에 매달린 자세 그대로 휴식을 취한다.

 "......휴우."

 고민이 있을 때마다 운동을 하는 것은, 그의 버릇이었다. 실로 건전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조금 살벌하다고 생각되는 운동량. 거기다 그의 험상궂은 얼굴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화가 나서 자신의 육체를 혹사하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비록 이곳에서는 보고 있는 사람이 없긴 하지만.

 "자- 그러면 난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나."

 게임을 시작하느냐,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느냐. 그것이 바로 그의 고민의 원인이었다. 육체적인 능력이라면 누구 못지 않다고 자부하지만, 어쨌든 가진 무기가 없었다. 가방에서 나온 것이라곤 어디에도 쓸모 없을 것 같은, 왠지 꽤나 제멋대로인 성격을 갖고 있을 것 같이 생긴 여자아이의 전신상. 솔직히 말해, 장난친다고 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나마 지금은 이미 버렸다.

 거기다 그의 무도가로서의 자존심이, 약한 자를 공격한다는 행위에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지킬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거리낌이 드는 것만은 사실. 그렇다고 가만히 죽어줄 수 있느냐고 하면 그것도 부정이다.

 "......머리가 아프잖아, 이거."

 역시- 머리쓰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그는, 금방 짜증을 내며 정권으로 나무를 후려친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자세히보니 두터운 나무줄기가 움푹 패여있다. 사람이 맞았다면 내장 정도 가볍게 파열될 것 같은 초절한 위력.

 "......이엽!"

 돌려차기가 다시 줄기를 직격하자, 주먹으로 후려쳤을 때 이상의 진동과 함께 무수한 나뭇잎이 떨어져내린다. 그리고 바로 그때, 누군가가 쓰러지는 듯한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남자의 큰 목소리-

 "......싸움인가?"

 고우키는, 일단 상념을 접고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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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13번 신은, 눈 앞을 지나가는 여자를 가만히 숨죽여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는 보우건이 들려있고, 어깨에는 엽총이 메어져있다. 무기가 두개인 것으로 봐서, 분명히 이미 누군가를 해치웠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분명히 만만치 않은 상대임이 틀림없겠지만......

 '운이 나빴군......'

 우연의 산물인 것인지, 마침 자신이 매복해있는 구덩이 쪽으로 곧바로 걸어오는 여자. 신은 자신의 무장인 전기충격기를 단단히 손으로 움켜잡았다. 마른 나뭇잎들로 몸을 단단히 숨기고 있어서, 들키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그는 그대로, 여자가 자신의 옆을 지나가길 기다렸다.

 자박자박.

 가벼운 발소리가 자신의 바로 옆을 밟고 지나갈 땐 순간 심장이 멈춰버릴 것 같았지만, 발소리는 전혀 뭔가를 눈치챈 기색없이 다시 자신의 곁에서 멀어져간다. 신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재빨리 상반신만을 돌려과 동시에 여자의 피부가 드러난 하얀 다리에 대고 전기충격기의 스위치를 눌렀다.

 빠지직!

 가볍게 스파크가 튀는 소리가 나고, 콘덴서에 충전된 고전압의 전류가 여자의 신경을 달린다. 순간적으로 횡경막이 수축한 것인지, 입에서 바람새는 듯한 소리를 내며 여자가 쿵 하고 큰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보우건이 손에서 빠져나오며 뒹군다. 고개를 뒤로 돌리려는 것으로 봐서 아직 의식은 있는 모양이지만, 제대로 몸은 움직이지 않음이 틀림없었다. 신은 승리를 확신하고 구덩이에서 기어나와 소리내어 웃었다.

 "잡았다."

 "......"

 대답없이, 경련하는 몸을 움직여 신을 바라보는 빨간 머리의 여자. 수세에 몰려있음에도, 어째선지 눈에 공포감이 서려있는 것 같진 않았다. 표정이 굳어있지만, 그건 전격의 충격 때문일 뿐인 것 같이 보였다. 신은 왠지 그게 마음에 안 든다고 생각했다.

 "무기가 두개인 걸로 봐서, 벌써 누구 하날 죽였겠지? 이 살인자."

 여전히 묵묵부답인 채 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여자의 얼굴을 보며, 신은 상대를 몰아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건, 상대방이 죽여 마땅한 인간이라고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행동이었겠지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그의 말은 맞았다. 그녀는 조금 전에 자신을 지켜주겠다고 말했던 남자를 죽이고 오는 길이었으니까.

 "엉? 말 좀 해보라구!"

 첫 승리에 의한 희열이 그의 냉정을 빼앗아 간 것일까, 점점 목소리가 커져가는 신. 그러나 그는 그 소리가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고 있었으리라곤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뭐, 됐어. 이대로 죽여주지. 살려두면 분명히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다닐 테니까."

 쳇 하고 혀를 차곤, 여자가 떨어뜨린 보우건을 집어든다. 여자의 어깨에 메인 엽총을 먼저 빼앗지 않은 것은, 그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대로 보우건을 당겨서 장전한 다음, 화살을 똑바로 여자의 피처럼 붉은 머리에 겨냥하는 신. 하지만 기세등등한 말과는 달리 손가락이 떨린다.

 ......어쨌거나 인간이다. 살인자라고 자신을 합리화해도, 아무리 인간같지 않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도, 겉모양만은 나무랄 데 없는 인간이다. 그런 것에 대고 망설임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인간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신은 아직, 정상적인 인간의 범주에 머물러 있었다.

 다시 보우건의 손잡이를 고쳐 잡는다. 마치 사격을 하기 직전 겨냥을 정확하게 하기 위한 사전행동처럼 보이지만, 이만큼 거리가 가깝다면 사실 그런 건 아무런 소용없다. 지금 여자와의 거리는 눈대중으로 대고 쏴도 적중할 수 있을 가까운 거리였으니까.

 끼리릭-

 겨우 서서히 손가락이 당겨지고, 당겨진 현이 풀려나려는 찰나-

 "우리얍-!"

 뒤에서 거친 사내의 괴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쪽을 돌아보자마자 신에게 곧바로 날아들어오는 날아차기-!

 퍽!!!

 "크학-!!!"

 그대로 어깨에 적중- 그리고 순식간에 수미터를 날아 등부터 흙바닥에 들이받는다. 그리고 산을 달려내려오던 기세를 그대로 살려 날아차기를 날린 고우키는, 크게 흡! 하는 소리를 내며 양팔을 교차시켜 내림과 동시에 다리를 넓게 벌려 전투자세를 취한다. 겨우겨우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는 신. 콘크리트 바닥이었다면 낙하하면서 큰 충격을 입었겠지만, 흙바닥이 충격을 경감시켜준 모양이었다.

 "컥......제기랄, 아프잖아......대체 뭐야, 넌!!!"

 마치 공들인 사냥감을 빼앗긴 사냥꾼처럼 소리치는 신. 그러나 고우키는 냉랭한 눈빛으로 '인간사냥꾼'을 노려본다.

 "......무기로 사람을 해하려 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라, 놈!!!"

 적수공권으로 보우건에 맞서는 고우키. 신은 고우키에게 당해 어깨가 움직이지 않는 오른팔 대신 왼팔로 보우건을 들어 겨냥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고우키의 가슴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짧은 화살-

 "흠!!!"

 하지만 고우키는 숨을 짓누르는 것 같은 무거운 기합성과 함께 화살을 수도로 쳐내버린다. 신은, 눈을 크게 뜨며 경악했다. 그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묘기-

 "제, 제기랄......!"

 화살은 아직 남아있지만, 한쪽 팔을 못 쓰는 지금 재장전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신은 곧바로 등을 돌려 달아나버린다. 하지만 뒤를 쫓지 않는 고우키. 적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쓰러져있는 여자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러자 이제 겨우 조금 몸을 움직일 정도는 된 것인지, 상반신만을 일으켜 바닥에 앉아있다. 롤 모양으로 펌된 붉은 머리칼에 흙이 조금 묻어있었지만, 그녀의 미모를 상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고우키는 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음......좀 괜찮소?"

 하지만 대답이 없다. 그러나 얼굴에만은 희미한 미소를 띄고 있는, 여자-

 "......"

 고우키는 왠지 기분이 나쁘다고 생각하며, 그럼 이만- 하고 먼저 작별을 고한 다음 뒤돌아서서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등을 돌림과 동시에, 여자의 팔이 움직여 자신의 엽총을 고우키의 등에 겨냥한다. 소리없이, 그리고- 살의도 없이.

 만약 살의가 있었다면 고우키가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지만, 그녀에게는 정말로 살의조차 없었다. 그저 있는 것은 희열 뿐. 사람을 죽일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을 때 띄우는, 그녀의 극상의 미소-

 ......천천히, 그녀의 가늘고 흰 손가락이 방아쇠 울 안에서 방아쇠를 조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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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측하사 | 2008/08/29 21:20 | ┣TS로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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